Interviewer: 이용균 (noninertialframe.com)
메딕(MEDiC)은 암 치료제 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플랫폼 기술을 가지고 있는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6월 초에는 미국 거대 제약 회사인 Bristol Myers Squibb(BMS)와 종양 표적 발굴에 대한 공동 연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한규호 대표와 메딕이 그리는 미래와 이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기사는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하고 필자와 같이 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인 글이다.
메딕 소개
암 치료제 개발은 첫 단계로 암 유발 유전자를 찾고, 두 번째 단계로 그 유전자에 대한 약물 치료제를 만든 후, 마지막으로 투약하기에 적합한 환자를 찾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유발 유전자에 대한 약물 치료제를 찾는 두 번째 단계는 in silico drug screening 기술이나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AlphaFold와 같은 AI 기술 등으로 활발한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첫 번째와 세 번째 단계는 항암제 개발의 성공률에 가장 큰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아 왔다. 메딕은 이 기회를 포착하여 현재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는 기술과 개발 중인 항암제에 가장 반응성이 좋은 환자군을 찾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메딕이 집중하는 두 가지 단계 모두 다음과 같은 암의 특성들로 인해 기술적인 어려움들이 있다. 첫 째로 같은 종류의 암처럼 보여도 환자마다 암의 형질이 너무 달라 유발 유전자를 찾는 것이 어렵고, 둘 째로 단백질 표적을 정해 약을 개발해도 약 투여시 환자에게 나타나는 약의 효과와 몸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재 사용되는 대부분의 약은 다양한 암이 지닌 공통적인 부분을 공격하는데, 이는 정상적인 세포에도 영향을 주어 환자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반면 특정 유전자만 공략하는 치료제는 투약을 하기에 적합한 환자를 정확히 특정하지 못해 90% 정도 실패하고, 신약 개발 비용을 증가시킨다.
첫 번째 문제 해결을 위해 메딕은 암의 유발 유전자를 찾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2만 개 정도 되는 사람의 유전자를 한 개씩 없애면서 어떤 유전자를 없앴을 때 암 세포가 잘 자라는지 측정하면 유전자와 암의 인과 관계를 알 수 있다. 15년 전에 시작된 기능 유전체학(Functional Genomics)과 10년 전부터 각광받는 유전자 가위 기술(CRISPR) 덕분에 유전자 변이가 암세포에 주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기능 유전체학의 “기능”은 영어로 “Functional” 즉 “함수형”을 뜻하는데, 함수의 정의처럼 변이라는 변수(x)가 정해지면 암에 주는 영향(y)이 하나로 결정되는 현상을 활용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기존의 연구가 변이의 결과를 보고 유전자와 암세포의 상관 관계를 찾았다면, 기능 유전체학 기반의 연구는 유전자 변이와 암세포의 인과 관계를 통해 각 유전자의 기능(Functional mapping)을 찾는다.
메딕은 3차원 암 세포에 대량으로 유전자 가위를 적용하는 고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 유전학 연구의 대부분은 2차원으로 배양한 세포를 사용하지만 환자의 몸에 있는 종양은 3차원이기 때문에 연구와 현실 사이의 큰 괴리가 있었다. 2차원 모델은 3차원인 현실의 세포와 완전히 달라 2차원 세포를 활용한 연구는 성능이나 정확도의 차이를 넘어 잘못된 결론이 도출될 위험이 있다. 한규호 대표는 2020년 네이처지에 등재된 논문에서 기능 유전체학을 3차원 종양에 적용한 결과가 기존의 2차원 실험으로 얻는 정보와 매우 다르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물론 3차원 세포를 활용한 실험은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들기 때문에 종양을 규모있게(scalable) 배양하여 안정적인 실험을 하는 시스템과 이를 운영하는 노하우 역시 메딕의 핵심 지적재산권이다.
메딕의 플랫폼은 암 치료제 개발의 두 번째 어려움도 공략하여 약에 대한 환자의 반응 예측을 돕는다. 실험 대상인 약과 2만개의 유전자 간의 인과 관계를 측정하여 약에 대한 반응성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간암 세포줄 10개로 만든 20만 개의 변이 중 약과 반응을 가장 잘 하는 변이를 통해 유전자 표적 정보나 바이오마커(biomarker)를 발견한다. 실험을 통해 약과 신체 반응 사이의 인과 관계 데이터를 쌓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데이터도 더해 머신 러닝을 적용하면 약에 대한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 머신 러닝 결과의 정확도는 데이터의 질에 의해 결정 되는데, 메딕은 고형암에 대한 세계 최고의 데이터셋을 갖고 있다. 3차원 종양으로 실험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과 비슷한 환경에서 실험 데이터를 얻는데, 2차원 실험으로 나오는 데이터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또한 노이즈가 높은 상관 관계 데이터가 아닌 인과 관계 데이터라는 점도 중요한 차별점이다.
대부분의 제약 회사는 몇 십 혹은 몇 백 가지 세포 샘플에 대해서만 실험한 후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때문에 임상시험의 대상이 될 환자를 제대로 특정하지 못한다. 만약 약의 바이오마커를 찾아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면 현재의 10% 안팎의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메딕 창업 과정
한규호 대표는 포닥(Postdoctoral Researcher)을 마칠 때쯤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 머물면서, 회사 창업을 통해 스탠포드에서 하던 연구를 조금 더 규모 있게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탠포드에서 박사와 포닥으로 13년 동안 연구한 내용이 학계와 스타트업에서 모두 활용 가능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스탠포드 기계 공학과에서 3차원 세포 배양 분야의 박사 학위를 수여한 이홍표 박사는 자신의 기술을 어떻게 의미 있게 활용할지 고민 중이었다. 같은 학교와 한인 교회에서 친한 선후배 관계였던 둘은 어느 날 대화를 하다 각자의 전문 분야를 합쳤을 때 암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기술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둘의 생각은 암 치료에 대한 사명감으로 발전했고, 상업적인 가치에 대한 확신도 생겨 창업을 결심했다.
한규호 박사와 이홍표 박사 모두 스타트업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우선 바이오 및 헬스케어 분야 창업자들이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발표하는 UCSF의 창업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그 후 Illumina라는 미국의 대형 바이오텍 회사에서 운영하는 엑셀러레이터에서 아이디어를 다듬고, 스타트업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배웠다. 이 두 프로그램을 참여하며 사업의 윤곽이 그려졌고, 창업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바이오텍 스타트업 창업 과정은 소프트웨어 분야의 창업과는 조금 다르다. 회사를 시작할 때 공간과 장비가 필요하고, 첫 결과를 만들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투자금의 규모가 소프트웨어 회사가 받는 것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크다. IT 스타트업에게 위워크 같은 공유 오피스가 있듯 바이오텍 스타트업에게도 실험 장비를 대여해주는 인큐베이터가 있다. 메딕은 스탠포드의 스타트X에서 시작해 MBC BioLabs라는 인큐베이터를 거쳐 지금은 Valley Research Park라는 바이오텍 전용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마운틴뷰에 위치한 메딕의 오피스에서 한규호 CEO, 이홍표 CTO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타트업 운영에 대하여
한규호 대표는 직원 채용 시 스스로 동기 부여를 찾아 회사와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으려고 노력한다. 생명공학이라는 분야에서는 성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힘든 과정을 즐겨야 하고, 장기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직원들을 동기부여 시키기 위해서는 팀이 하는 일의 의미를 계속 상기시킨다. 창업 초기, 제약 회사와 일을 시작한 후 첫 몇 개월 동안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힘들고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첫 기술 검증 과정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후에는 회사의 기술과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갖고 연구 개발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팀원들이 함께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메딕은 한 대표의 첫 회사이다. 대부분의 교수들처럼 학계에 남은 후 기술적인 부분만 담당하는 사이언티픽 파운더(scientific founder)로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창업의 모든 과정을 경험하고 싶어 풀타임 파운더(full-time founder)로 스타트업 여정을 시작했다. 그래서 투자 유치, 행정적인 일, 채용 등 대표로서 연구와 관련이 없는 일에도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세일즈나 고객과의 의사 소통을 할 때에는 메딕 플랫폼을 과학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자로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생명공학 분야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아서 일과 그 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은 밤낮없이 매달리지만 실험, 개발, 연구는 단기간에 집중해도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호흡을 유지한다.
앞으로의 방향
한규호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회사를 잘 운영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제약 회사와 진행중인 연구를 통해 메딕의 기술을 검증하고, 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메딕의 가치를 증명할 것이다. 앞으로 몇 개월이 회사의 빠른 성장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장기적으로는 메딕의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보가 약 개발 과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싶고, 더 나아가서 자체적인 암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암 치료제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모습을 띄고 있다. 새로운 표적에 대한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신약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이미 약의 효과가 검증된 표적에 대한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약 개발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메딕의 기술을 통해 약이 어떤 환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예측하여 퍼스트 인 클래스 약의 실패 확률을 낮춘다면 다양한 암 환자를 적은 비용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암 치료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한규호 대표와 메딕이 걸어가는 길의 끝에는 치료제 10개 중 9개가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고, 다양한 환자들에게 값싼 약이 공급되는 세상이 있다. 전 세계의 1800만 명(2020년 기준)이 넘는 암 환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때까지 메딕의 혁신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