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er: 이용균 (noninertialframe.com)
Cobi Computer Science(전 Popfizz)는 미국 중등(6-12학년)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 CS) 온라인 커리큘럼과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학교에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플로리다의 대규모 카운티에서 공식 CS 교사 연수 시험 준비 프로그램으로 선정된 후 플로리다 컴퓨터 과학 교사 네 명 중 한 명이 Cobi로 연수를 받았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서비스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지연(Jane Lee) 대표와 그 여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 기사는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글이다.
Cobi Computer Science 소개
2010년대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초, 중, 고등학생들의 수도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미국의 CS 공교육 역량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성장하여 수많은 학교들이 컴퓨터 과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와 도구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Cobi는 모든 학생들이 컴퓨터 과학을 배울 수 있게 AP 시험(Advanced Placement라는 미국 대학 학점을 미리 취득할 수 있는 대학 과정 인증 시험) 준비 과목을 포함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동시에 교사의 수와 역량을 늘릴 수 있도록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018년 여름에 서비스를 출시한 후 지금까지 8만 명 이상의 학생이 Cobi의 컬리큘럼을 수강했고, 교사 3천 명 이상이 연수를 받았다. AP Computer Science A와 AP Computer Science Principles 커리큘럼은 College Board(미국의 대입 시험을 운영 및 관리하는 비영리 단체)의 인증(endorsement)를 받았고, 로블록스 커뮤니티 펀딩(Roblox Community Fund)을 받아 로블록스로 컴퓨터 과학을 배우는 과목도 운영한다.
Cobi Computer Science는 초, 중, 고등학생들을 위한 한 학기 혹은 일 년 단위의 다양한 커리큘럼들을 제공한다. 컴퓨터 과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파이썬과 자바스크립트로 웹사이트나 게임을 직접 개발하는 과목부터 대학 입시를 위한 AP Computer Science 시험을 준비하는 과목도 있다. 교사들에게는 수업용 슬라이드, 과제, 해설지 등이 제공되어 수업 준비 및 진행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물론 선생님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Cobi의 커리큘럼은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같이 Cobi로 컴퓨터 과학을 학습하고 있다.
Cobi의 핵심 가치는 양질의 학습 컨텐츠와 학생들이 그 컨텐츠를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게 돕는 제품이다. 이지연 대표는 이 두 가지를 잘 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AP CS 시험 준비 과목 제작은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다. College Board에서 발표하는 요구 사항이 있기 때문에 학교 수업시수에 맞춰 시험 출제 범위 내의 강의, 과제, 활동 등을 만들면 된다. 반면 시험 준비가 목표가 아닌 초급 과목은 정형화된 형식과 요구 사항이 없어 커리큘럼의 최종 목표부터 수업 진도, 과제 난이도 등 고민할 요소가 많다. 보통 대학 강사 경험이 있는 업계 사람들과 계약하여 함께 개발하는데, 원하는 경력의 사람이 많지 않아 첫 단계부터 어려움이 있다.
아무리 좋은 교육 컨텐츠를 제작해도 결국 학습은 학생의 몫이기 때문에 이지연 대표는 학생들의 동기부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연구했다. 강의를 애니메이션 위주로 구성하고 길이를 줄여 학생들의 부담감을 덜어준다. 심화 내용은 추가 자료로 제공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을 쉽게 따라갈 수 있지만 더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자기주도 학습으로 깊게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Cobi는 학생들이 코딩을 연습할 수 있는 자유도 높은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내적 동기를 자극한다. 각 단원 끝에는 개방형(open-ended) 프로젝트가 있는데, Cobi가 제공하는 툴을 한계 없이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 무엇이든 만들어볼 수 있다. 특히 Cobi의 IDE(개발 환경)를 사용하면 그래픽 요소를 쉽게 구현하고 시각화할 수 있는데, 이를 제공하는 온라인 IDE가 별로 없어 학생들은 Cobi에서 더 효과적으로 연습할 수 있다. 그 결과 이지연 대표는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마무리 프로젝트 결과물을 만든 학생을 많이 봤다고 한다.
Cobi에서 과제를 하고 있는 학생. Cobi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개발 환경은 그래픽 구현 및 시각화를 쉽게 만들어 학습의 효과를 높인다.
Cobi Computer Science 창업 과정
이지연 대표는 오랫동안 교육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컬럼비아(Columbia) 대학의 Teachers College에서 공부할 때 컴퓨터 교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시 자바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처음 코딩을 배웠는데, 과제를 하면서 희열을 느낄 정도로 재밌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부트캠프가 없었기 때문에 자바 수업을 수강한 후에는 뉴욕 대학(NYU)에서 운영하는 평생 교육원에서 개발을 배웠고, 친구들과 이것저것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컴퓨터 과학 교육 분야로 나아갔다. 이지연 대표는 만약 더 어렸을 때 코딩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다며, 여자 학생들에게 더 많은 코딩 교육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지연 대표는 NYU에서 CS를 공부하며 Sun의 Certified Professional 인증을 받았다.
몇 년 후 네이버 커넥트재단에서 일을 하며 부스트 캠프를 기획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미국에는 컴퓨터 과학 교육 열풍이 불고 있어 교육 과정을 개발할 때 미국을 많이 벤치마킹했는데, 그 과정 중 미국에서 재밌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버가 엔트리교육연구소(한국형 프로그래밍 교육용 언어를 만들었던 스타트업)와 함께 추진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창업을 결심했다. 2017년 창업 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엑셀러레이터에 참여했고, 3개월 동안 실리콘 밸리에서 시장 조사와 데모 제작을 했다. 201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여정에 들어섰다. 공동 창업자 및 CTO는 엔트리교육연구소 개발자였는데 이지연 대표가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출근할 때마다 항상 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꾸준한 모습을 보고 같이 창업을 했다.
이지연 대표는 창업 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엑셀러레이터에 참여하며 스타트업 세계로 첫 발을 내딛었다.
사업 초기에는 고객 유치가 굉장히 어려웠다. K-12(초, 중, 고) 공교육 시장은 B2G(Business-to-Government)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어 세일즈 사이클이 길고 단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교육 서비스의 사용자는 교사와 학생이지만 구매 결정권자는 행정가이기 때문에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영업의 단계마다 관계자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대응하며 설득해야 한다. 대부분의 교사는 예산 부족 문제를 겪고 있어 해당 지역의 교육 담당 기관에 세일즈를 해야 하는데, 계약을 성사시키려면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경력직 같은 신입”만 채용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Khan Academy와 같은 대규모 비영리 단체들이 다양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경쟁은 더더욱 어렵다. 이런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 시작 후 첫 1년은 레퍼런스를 만들기 위해 교사 연수 장소를 직접 방문 하는 등 발로 뛰며 다양한 실험을 했다. 자본금이 떨어져 갈 때쯤 시드 투자를 받기로 결정했고, 투자금을 받은 직후 세일즈 팀을 꾸렸다.
창업 후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트랙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 구매자는 대부분 신속하게 CS 커리큘럼 및 교육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 사립 학교였고, 이 레퍼런스가 쌓이면서 점점 더 많은 학교에 세일즈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라는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보통 교사 연수는 대학 캠퍼스에서 진행되는데 코로나 때문에 전부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교육 기관들이 급하게 온라인 연수 프로그램을 구했고, Cobi는 플로리다 주에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게 되었다. 이 일이 레퍼런스가 되어 플로리다 학교들이 Cobi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과학 교육 컨퍼런스에 참가한 Cobi(전 Popfizz).
2023년 여름에는 Popfizz에서 Cobi로 브랜드 및 제품을 바꾸었다. 2018년에 개발했던 초기 버전으로 스케일링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고, 비슷한 이름의 경쟁사 때문에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Popfizz에 익숙한 기존 사용자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툴에 적응을 한 사용자들은 Cobi를 더 좋아한다.
컴퓨터 교육과 인공지능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과 함께 수많은 회사들이 교육에 AI를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지연 대표 역시 교육 과정이나 코딩 툴에 코파일럿 같은 AI 기능 제공을 고민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수의 선생님들이 수업에 Replit 같은 온라인 IDE를 사용하다 인공지능이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느껴 Cobi로 수업 툴을 바꿨다고 한다. 컴퓨터 과학을 처음 배울 때 코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짜봐야만 내재화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는 코파일럿 기능을 마냥 환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Cobi는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학생보다는 교사를 도와주는 여러 기능을 제공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목표
이지연 대표는 Cobi를 성장시켜 중등 컴퓨터 교육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서비스를 탄탄하게 키워갈 계획이다. 개인적인 목표로는 다른 한국인 스타트업 대표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엑셀러레이터 기간 동안 미국 고객을 대상으로 파일럿 및 세일즈를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한인 대표들을 많이 봐서 항상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런 취지에서 2023년 여름에는 비즈니스 영어 책도 출간했다.
인터뷰를 하며 진정성이란 나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금세 나타나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난관을 헤쳐가며 내딛는 이지연 대표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몇 년 후 Cobi의 수강생 역시 창업을 하여 Pay It Forward하게 되는 선순환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