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 망했을 때의 장점

Writer: 한기용

2000년 6월에 미국으로 와서 조인한 회사는 대학 동기가 공동 창업자/CEO로 있던 WiseNut이란 회사였다. 이 친구(윤여걸)는 앞서 MySimon이란 회사를 CNET에 매각하고 그 다음에 창업한 회사가 WiseNut이었는데 웹 검색엔진 스타트업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삼성전자를 다니고 있었는데 병역특례 끝나고 2주 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왔다. 다행히 와이프도 좋아했다 (사내커플이었음) 기생충의 송강호처럼 별다른 계획이 없이 그냥 왔다. 암튼 친구를 잘 둔 덕분에 미국에 온 셈이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WiseNut에서 만난 동료 3명과 2002년 1월 Inverito라는 회사를 공동창업했었다. SEC Filing 검색엔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고 EdgarIQ.com이란 서비스를 만들었다. 만들고 보니 이게 별로 돈이 안 된다는 거를 깨달고 SEC Filing 중에 Insider Trading에 관련된 Form 4 파일링에 집중해서 Insider Trading 관련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InsiderScoop.com이란 서비스를 만들었다. 피봇을 한셈인데 그때는 그런 용어가 있는지도 몰랐다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그 서비스의 홈페이지를 찾아봤는데 안습이다.

이 서비스는 한달 $29.99로 팔았고 6개월 만에 천명 정도(정확한 숫자는 가물가물)까지 유료고객을 만들어냈는데 아주 커질 시장은 아닌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 첫째 아이도 태어나고 (이번 가을에 대학간다) 여러모로 참 힘들었다 (up-and-down). 월급 받고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참 부럽기도 했고 무슨 부귀공명을 누리고자 스타트업을 시작했는지 후회도 하고 물론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고 유료고객이 느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낀 시간도 많았다. 암튼 또 피봇을 했어야 하는데 공동창업자들간의 사이가 나빠져서 더 지속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사이에 WiseNut은 Looksmart라는 회사에 인수되었고 자연스레 Looksmart로 돌아갔다가 2004년초에 야후에 조인했다. 아마 창업을 해보지 않았으면 계속 그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 듯 한데 일단 해봤으니 더 이상 호기심은 없었고 월급을 잘 받으며 커다란 스트레스 없이 회사를 다닌다는 것에 참 만족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좋은 매니저들을 만났고 디렉터까지 승진도 할 수 있었는데 창업을 해서 망해보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만족하면서 열심히 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창업해서 망해도 좋은 점이 있더라는 뭐 그렇고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 🙂

사족: 여기서 개인적으로 배운 교훈은 스타트업에서 창업자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인데 관계가 좋지 않으면 피봇을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창업자의 수가 많을수록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시작하는게 좋다는 것도 배웠다. 지금도 가끔 우리 넷의 사이가 더 좋아서 계속 피봇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가능했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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