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공지능 X 바이오-미국에서의 기술창업이란?

interviewer: 류호산 (hoteve)
UC 버클리에 봄 학기 교환학생으로 와 있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 인지과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궁극적인 커리어 목표로 창업을 꿈꿉니다. 한국에서 창업학회 활동과 스타트업 PM/UX 인턴십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현재는 마음의 연장으로 동작하며 창조성을 증폭시키는 지적 기술, 인공지능(DL), UX 디자인, HCI, Product Management에 관심이 많습니다.

홈페이지: https://hoteves-mind.super.site/
이메일: fbghtks1000@gmail.com


💡 본 글은 이상윤 대표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정민우 CTO님의 말씀도 함께 맥락에 맞게 중간중간 섞어서 정리되었습니다.

위트젠 바이오 테크놀로지 이상윤 대표님 (상단 왼쪽), 정민우 CTO님과(아래). /2023.2.18

회사 소개

초정밀 암 진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위트젠 바이오테크놀로지(WittGen Biotechnologies)라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 이상윤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Single-cell RNA sequencing이라는 기술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저희가 머신러닝으로 처리해 암의 이질성(heterogeneity)과 유전체 표현형들을 탐지해서 암이 행동하는 모습들을 관찰하고 예측합니다. 이를 통해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맞는 약물 치료가 무엇인지, 수술을 언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항암 치료는 언제 하면 좋을지, 그리고 그 치료를 했을 때 예후는 어떻게 될지 등에 대한 정보들을 의사들에게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암 진단은 개별 상황에 맞춰진 정적이고 평균적인 진단이였다면 저희는 종양을 이루고 있는 하나하나의 특성을 전부 발견해서 진단의 정확도와 정밀성에 기여합니다.

대표님의 경력

저는 한국에서 경영학과(95학번)를 나왔고, 학과 나오자마자 신한은행에서 한 10년 가까이 일을 했어요. 그중 95%의 기간을 투자금융부 IB(Investment Banking)에서 기술, 바이오 등과 관련된 투자 업무들과 자금 조달을 했고 글로벌, 특히 동남아(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지역에서 금융 자문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원래 계획은 싱가포르에서 펀드 매니저(바이사이드) 같은 일들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이후 제가 좀 다른 인생의 방향을 찾고 싶어서 UC 버클리 하스 스쿨에서 풀타임으로 mba를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했습니다. 버클리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이제 실리콘밸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죠.

창업이라는 생각은 아주 예전부터 심각하긴 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해왔던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창업을 해야 되지 않을까? 내 사업을 하는게 맞지 않을까? 계속 자문했죠. 하지만 일하면서 좀 많이 잊고 무시하면서 지내왔는데, MBA 기간 동안 이런 (창업 친화적인)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이번이 아니면 인생에서 절대 못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졸업을 하자마자 창업 쪽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죠.

저는 실리콘밸리가 버클리 근처라는 것도 2014년에 오면서 처음 알게 됐고 당시에 일론 머스크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여기 친구들은 다 스타트업 얘기만 하는 거예요. 스타트업, 기업가정신, VC… 버클리는 특히 그런 지원 프로그램들이 많잖아요. MBA 친구들, 버클리 학생들이 창업들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죠. 그리고 방학 때 인턴 인터뷰를 보는데 재미가 없는 거예요. 내가 이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뭔가 나를 뽑아달라고 나를 어필하는 과정이 너무 무의미한 것 같고 싫었죠.

그러다 우연히 다른 사업자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공동창업자이자 전략 담당 사업 개발 담당으로 스타트업계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됐죠. 이후로 한 두세번 크게 시도를 했다가 잘 안 되기도 했고요. 실패 이후에는 제 경험을 녹여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 스타트업들을 컨설팅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정말 한 번 더 마지막으로 도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현재 바이오 쪽으로 다시 기회를 찾게 됐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좀 밸리데이션(validation)을 해볼 필요가 있어서 다른 분들과 이 아이디어를 논문화해서 사업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검증해보자라고 생각했고, 이후 뭔가 좀 포텐셜이 보여서 마음이 맞는 분들과 사업화를 시작했죠. 1년 반 전부터 회사를 설립하지도 않고 그냥 계속 가능성을 테스트해 보는 일들을 했어요. 그러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결과들이 나와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창업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가야 할까

(MBA 이후) 제 커리어적인 유일한 목표는 창업을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일반적인 창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이테크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사람들한테 유의미하게 적용되는 기술에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 가서 같이 사업해보지 않겠냐는 식으로 이야기도 해봤고, 은행 경력 관련해서 이제 기반으로 한 창업으로도 가봤고, 잘 안 되기도 했었죠. 경험과 배움이 있었지만, 좀 많이 돌아가지 않았나 싶어요. 명확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라는 생각하기보다는 너무 창업이라는 거 자체에 너무 꽂혀 있었던 터라서, 좀 러닝 커브가 길었다라고 봐야 될까요. 근데 다른 경력을 쌓아서 다른 일을 해봐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진 않아요. 무조건 창업과 관련된 일을 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비록 지금도 많은 돈을 못 벌지만 아예 수입이 없을 때도 있었거든요. 꽤나 많은 시간을 버텨왔죠.

뭔가 이력을 쌓기 위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하기 위한 일들을 하고 생각하는 시간 그리고 좀 버티는 시간. 그런 것들이 이제 미국 후에 이 저의 삶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 사람은 뭘 하는걸까?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취직이라면 진작에 가능했겠지만 어떻게든 회사를 설립하고 그 끝을 봐야겠다는 것이 제 개인의 성공의 기준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실행을 해서 제품이 나오고, 고객과 소통이 되고, 고객들의 니즈가 우리 서비스나 제품에 녹아들고…이런 것들을 해내는 일들까지 연결하는 게 지금은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저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한 것들을 해왔지, 뭔가 이력을 쌓기 위해서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인공지능과 바이오의 통합

제가 졸업할 때쯤인 2016년에는 AI보다는 블록체인이 훨씬 더 트랜드였어요. 그래서 블록체인을 조금 이제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블록체인을 어떻게 상용화시켜야 되는지 모르는 거죠. 그러다가 가상화폐로 트랜드가 넘어간 것이고, 그 틈새에서 이제 AI가 나오기 시작했죠.

전설의 이세돌 X 알파고 대전이 있었던 ‘2016년’. 이때를 기점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대부분의 일반인들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때마침 AI를 이용해서 신약 물질을 만들겠다라는 분들이 저한테 같이 사업을 한번 해보자라고 연락이 왔었었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올로지 쪽으로는 어느 포닥하는 분이 하시는 걸 보고 제가 찾아가서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도 하면서 바이올로지 쪽을 공부하기 시작을 했었고요. 물론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못하죠. 제가 전공자가 아니니까. 저는 주로 어떻게 하면 이 사업이 될까? 사업화가 됐을 때 이 기술이 사업화가 될 수 있을까? 에 메인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2021년 초에 미국에서 열린 한국 바이오 세미나도 참여하면서, 좀 친근해지는 과정을 가지기도 했고요. 이처럼 이것저것 다 하고 다녔으니 다른 분들이 볼때는 좀 이상해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다 오픈을 해놓고 있었고, 그런 저의 입장에서 인공지능 분야가 바이오 쪽에서는 초기도 안되는 그런 상태라는 것이 보였던 것이죠. 그렇게 두 분야를 접목시키면서 아이디어를 디벨롭시키고, 다른 분들과 함께 feasable하게, 타당성 있게 개발이 가능해졌던 것 같습니다.

사업의 핵심 중의 핵심: 고객 중심 가치관에 대해

제가 일했던 신한은행이라는 곳이 좀 특이해요. 실제로 사업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고객 만족을 제일 우선순위로 하는 유일한 은행이었습니다. 학부 재학 때도 고객 만족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배웠었고요. 사실 말은 쉽지만 이를 창업으로 연결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결국 모든 비결은 사용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신한은행은 실제로 국내 금융권 최초로 ‘고객만족경영’이라는 컨셉을 도입하고 고객중심 기업문화를 가져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은행산업 부문 고객만족도(KCSI)에서 9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일례로, 제가 이제 네셔널 사이언스 파운데이션(NSF)에서 이제 운영하는 아이콥(I-Corps)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기술 스타트업에 5만 불을 투자해 주는 프로그램인데, 제가 반도체 사업을 리딩할 때 뽑혔던 적이 있었죠. 그곳에서는 기술을 개발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이건 버클리에서도, 스탠포드에서도 가르치는 스티븐 블랭크라는 분의 방법론에 기반한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고객이 쓸 수 있는 쓰고자 하는 프로덕트(제품, 서비스)을 만드는 게 사업이다는 말이거든요. 기술 개발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 교수는 고객개발방법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고객 발굴-고객검증-고객창출-회사 설립이라는 스타트업에게 통용되는 새로운 경제학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에릭 리스에게 영감을 주어 ‘린 스타트업’ 개념의 기반이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겁니다.

  1. 고객한테 어떤 value를 줄 것인가? 그것을 찾지 못하면 사업하지 마라. 무조건 망한다. 그것을 찾지 못하는 과정이라도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업을 하느라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2. 가치를 고객에게 줄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사업이라면, 제품이라면 만들어라.
  3.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으니 너의 생각으로 만들지 말고 고객을 만나서 말을 듣고 패턴을 찾아내어 고객이 원하는지 안 하는지를 찾아내라. 이 사람들이 어떤 걸 문제를 가지고 있고 어떤 솔루션을 원하는지의 패턴을 찾아서 거기에 맞출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을 만들 수 있으면 해라.
  4. 그러면 사업은 성공은 장담하지 못하지만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쓰는 고객이 있으니까.

결국은 되게 간단하죠. 결국 사업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사업이니까요. 위트젠에서도 싱글셀 데이터를 쉽고 빠르고 싸게 처리하고 싶다는 의사의 니즈, 또는 바이오 연구자들이 서버 구축이나 코딩에 어려움을 겪기에 자동화가 필요하다는 니즈와 같은 실제 니즈들을 제품에 반영하려고자 합니다.

사업에서의 가장 큰 챌린지

첫째로는 팀을 구성하는 것, 구성하고 나서 팀이 유지되는 것, 유지되면서 이걸 사업화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다 만족하는 조건들로 이루어지는 것. (지분은 어떻게 가져가고 월급은 어떻게 가져가고 풀타임인지 파트타임인지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해 계속 커뮤니케이션하고 서로의 의사를 파악하는 연속적인 과정들이 챌린지였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걸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확인할 것이냐. 데이터를 어떻게 모을 것이냐에 대한 챌린지가 있어요. 처음엔 제가 팀원 모두에게 함께 데이터를 모으자고 했어요. 처음엔 본인 일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죠. 하지만 내 스코프(업무 범위, 영역)는 딱 이거라고 정해놓는 것이 스타트업에서 경계해야 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대표 뿐만 아니라 모두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시에 이해도 안 되는 논문들을 쭉 읽고 거기서 데이터 쭉 뽑아내가지고 이게 맞는 건지, 처리가 가능한지 안 하는지 서로 살펴보고… 이런 것 처럼 사람들을 인게이지하게 참여하게끔 하게 하는 것이 큰 과제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됐을 때는 사람들이 이제 굉장히 전문적이면서도 주도적(proactive)으로 변하게 되더라고요.

또 다른 챌린지는 어떻게 (사업의) 포텐셜을 확인할 것이냐에 대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그냥 컨셉만 있었을 때 아마존에서 투자 연락이 온 적이 있었어요. 돈을 준다는데 개발할 사람도 없는 거죠.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르겠고 개발하기도 어렵고, 지금 다른 일도 하고 있고…이 모든 것이 결국 시간의 싸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또 결국은 또 아마존이 너희가 전체 개발 비용에 반을 투자하면 (인력) 매칭을 해서 빨리 개발해주게 하겠다 해서 어쨌든 제 돈을 들여서 시작했습니다. 뭐든 시작을 안 하면 안 되니까요. 어떻게든 빨리 돈만 아낀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마련해서 해야 되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마련하는 과정도 과제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또 좋은 지원 기회들이 생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국 가장 큰 과제는 돈도 중요하지만, 팀을 어떻게 공고하게 할 수 있고 그 팀원들이 어떻게든 이제 이 일을 해내가겠다라고 커미트먼트를 보여주게 할 건지에 대한 것이죠. 그렇기에 저는 어떻게 하는 게 비전을 보여주는 걸까? 어떻게 해야 이 좋은 이 사람들을 계속 동참시킬 수 있을까? 라는 고민 -사람들이 없으면 혼자서는 못하는 일이니까요-, 이게 제일 큰 과제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챌린지는 빨리 제품을 개시해서 테스트하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빨리 끝낼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고요. 결국은 시간의 과제인 것 같습니다.

미국 창업계의 특징: 창업자 중심주의

제가 스타트업 하겠다고 해서 이제 2016년부터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투자자들의 마인드 셋이 달라요. 그게 창업자들한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한국은 지금은 모르겠지만 창업자들한테 좀 제약이 좀 있어 보여요. 근데 미국은 전혀 다르거든요. 너희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많이 가져가서, 안정이 돼야 회사 일이 잘 되는 것이니까, 무엇이든 회사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하라. 회사 이사회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투자자들이 굉장히 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게끔 모든 서포트를 다 해주는구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제 경험가 경험해본 투자자, 또 제가 은행 투자자의 한 명으로서 경험을 해보았을 때는 한국은 회사의 사업을 쪼는 게 아니라 창업자를 쪼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렇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많은 환경들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제 현재 투자자분도 굉장히 창업자들의 이익이 사업의 이익이고 그게 이제 투자자 이익이라는 어떤 선순환적인 마인드를 갖고 계신 분이시고요. 투자자 중심의 문화를 창업자 중심으로 바꾸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투자 규모의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YC가 처음에 12만 5천 불을 주고 지분을 7%~10%를 가져왔는데 50만 불까지 늘렸죠. 게다가 37만 5천불은 Uncapped safe로 (이는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투자합니다. 이게 기본이 되어 대부분의 투자금들이 50만불에 가까워지고 있고, 어떤 곳은 처음부터 10%로 100만불을 가지고 1000만불 벨류에이션을 끊어서 시작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부 지원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정부 과학재단이라든가 내셔널 사이언스 파운데이션 등 기술 상업화를 위해서 투자를 많이 해주는데, 제약이 거의 없습니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서는 물론 감사가 들어오지만 자료만 있으면 됩니다. 저도 받아봐서 아는데 돈을 어떻게 썼는지 설명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에요. 선조치 후보고 시스템인거죠. 하지만 한국에서 제가 경험한 프로그램은 모든 행정적인 과정들이 창업자 중심이 아니라 자기들 중심이였어요. 예를 들면 서식 하나가 잘못됐고 개정판으로 다시 해야 한다고, 단순히 바꾸면 되는데 반려시키고 처음부터 모든 프로세스를 다시 밟게 하는거죠. 물론 본인들이 다칠까봐 그러는것이니 이해는 가지만, 아무튼 이 시스템이 디테일한 관리 위주다 보니 결국 창업자들이 본업인 창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거에요. 돈을 한번 받으려고 일주일동안 자료를 준비하고…하지만 미국에서는 일단 지원하는게 어렵지 선발되고 나서는 돈을 받고, 쓰고, 받고, 쓰고, 나중에 감사하고…그런데 그 감사도 저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떤 목적으로 이렇게 사용했다는 자료만 보여주면 되는. 사업에 집중을 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게 정말 큰 이점입니다.

창업은 어렸을 때, 고집을 버리고

창업은 어렸을 때 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나이가 마흔 중반인데 서른 후반부터 창업을 하겠다고 하려고 하니 애도 이제 크고…되게 힘들어요. 뭐가 됐든 어렸을 때 해야 잃는 것도 적고 교훈도 많이 얻고 그런 것 아닐까요? 제가 대학 졸업할 때는 창업은 주식과 함께 두 가지 금기 중 하나였어요. 무조건 좋은 기업에 들어가라고 했죠. 근데 그 기업들이 다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 거는 다들 퇴직할 때 알게 되죠.

빨리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이제 잘 해야겠죠. 뭐든지 이게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잘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되거든요.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결국 사용자 중심의 문제를 찾아서 무엇을 해결할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무엇이 됐든 이를 바탕으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보는 것은 결국 어렸을 때밖에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뭐든지 해보고 배워보세요. 저도 이거를 이 나이에 먹고 배우니까 오히려 오래 걸리고, 또 저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서 저는 지금 이 말 자체는 조언이 아니라 그냥 제 아쉬운 마음을 전하는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면은 사업은 망한다고 생각해요. 잘하는 것은 자기의 에셋으로 활용이 돼야지, 그게 목표가 되는 사람들은 다 실패하더라고요. 이건 제가 직접 봤습니다. 예를 들면 박사나 교수 창업이 있죠. 다들 자기가 연구한 것이 세상을 다 바꿀 것 같다고 생각해요. 연구자들은 그렇게 하다가 다 망하고, 다시 교수로 돌아가죠. 할 줄 아는게 그것 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던 아이콥 프로그램에서 5만불 주면서 이걸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거에요. 그렇게 하지 말라. 너가 그런 편향에 빠져 있는지 판단해보라고 돈을 주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연하지가 않아요. 이런 경우 대부분 잘 안돼죠. 내가 하는 것이 진짜 고객들이 쓸 수 있을 건지를 생각해야 되는데, 혼자 달나라를 가면서 고객도 달로 날아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본인의 에셋을 실제 사람들이 쓰게끔 할 수 있게끔 연결시키는 걸 잘 못하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제가 이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이유도, 저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어떤 인더스트리 분야에 꽂혀 있는 것은 좋지만, 그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만 가능한 사업 아이템을 찾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어떤 비전을 시장에서 봤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죠. 오해하면 안 되는게, 예를 들어 블록체인과 같은 분야를 장인정신으로 파도 물론 좋죠. 하지만 결국 시장이 어떤 기술을 원하는지, 내가 시장이 원하지 않는 기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죠.

A를 원하지 않는데 내가 A밖에 못 만드니까 그것만 만든다면…안되죠.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은 저 같은 경영학 전공자들이 많죠. 특정한 전문성이 없으니까 여기저기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물론 특정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죠. 이는 본인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업의 본질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을까요.

마무리

한국보다 미국에서 평가받는 밸류에이션이 훨씬 더 크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하지만 한국에서 잘하면 미국에서 밸류에이션을 못 받을 게 뭐 있겠습니까? 물론 미국에서 잘하면 출발 포인트가 다를 수는 있겠죠. 저도 한국과 미국 모두에 회사가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한국에서 해야 할 사업은 한국에서 하는 게 맞죠. 근데 한국에서 해야 할 사업인데 미국에서 하는 건 말이 안 되겠죠. 미국에서 해야만 하는 사업은 미국에 와야겠죠. 한국처럼 무작정 글로벌을 지향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모두 원하는게 다를텐데 말이에요. 글로벌로 진출하면 회사가 더 커지는 것 같고 좋을 수 있겠죠. 그걸 원하면 미국에 와야겠지만 서비스가 어디서 먹히는 서비스인지는 알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에 와서 그냥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처음에 저랑 같이 했던 분도 결국 돌아가셨는데, 니즈가 없는데 고집 부리면서 자기 것만 하려고 했거든요. 제가 백날 이건 안 된다고 데이터로 설명해도 안 되는데, 미국에서 깃발 꽂았다고 좋아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그냥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됐는데 이런 스타트업들이 상당히 많다고 알고 있어요. 그 외에도 인력이나 팀 운영 문제에서도 한국이 더 좋을 때가 있어요. 제가 아시는 분 같은 경우는 미국에서 YC 투자도 받고 하셨다가 엄청난 세금 내가면서 한국으로 다시 전환을 하셨어요. 여러 이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사업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이죠. 그러니까 무조건 실리콘 밸리가 옳은 길이다라고는 말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위트젠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미션.

결국, 창업하는 사람들은 바보고, 그냥 좀 또라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우리 와이프가 저한테 맨날 또라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한국이시든 미국이시든 아주 풍요로운 삶들을 살고 계시는 창업가 선배님들도 많죠. 특히 엑싯을 하신 분들은 돈의 여부를 떠나서 본인이 엑시트를 했다는 것 때문에 그야말로 어나더 레벨이 되시는 거죠. 이런 것이 좋아서 하시는 분들이 창업을 하는 게 아닐까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면서 거기서 점점 더 선한 영향력을 힘있게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분들. 그런 분들이 하는게 창업 아닐까 싶습니다.